시공간은 그곳에 얼어붙은 채 머무르지 않는다. 반드시 흘러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반만년의 풍파를 온몸으로 버텨 온 한반도의 사람들은 현대에 와서도 무식하리만치 굳세다. 고조선 건국 이래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한 1910년, 우리들은 도리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용기를 얻었다. 일제 치하의 모욕감에서 벗어나고자 서른다섯 해를 맨몸으로 투쟁했다. 머지않아 겪어야 했던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의 아픔은 차마 아물지 못한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발전’이라는 개념을 향한 군사 정권과 소시민들의 견해차는 인권과 자유를 묵살했다. 그럼에도 기어이 일궈낸 민주주의와 1988년 우리를 국제무대에 오르게 한 올림픽, 풍요에 파묻혀 과거를 망각한 국민들에게 또다시 겨울을 안겨준 IMF 구제금융 요청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는 짧은 시간 동안 격변했다. 더 이상 동방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없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사지가 불어 터지도록 치열한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있을 뿐.
빠르게 변하는 역사의 흐름 속에 피어난 한국 미술 또한 서양미술사의 권위를 배우고자 습득했던 50년대의 앵포르멜, 무엇보다 혁신적인 움직임을 추구하며 나아가던 60년대 말의 아방가르드, 일본 미술의 영향을 크게 받아 정립된 70년대 단색화와 80, 90년대 후기 단색화에 이르기까지 각 시기에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그중 70~80년대 쏟아져 나오던 전기 단색화 작품들의 경우 일제 치하의 국가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 이면에 짙게 자리 잡은 일본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해방 직후 거대한 세력에 대한 반항으로 그들의 것을 뛰어넘고자 그저 서구 문물의 흐름을 따라잡기 급급했던 50년대 앵포르멜의 흐름을 전복시켜 그리기 시작한 단색화는 한민족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허나 애석하게도 단색화가 지니는 한국의 민족성은 광복 이후부터의 역사를 일컫는 한국 현대사의 정신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조선과 그 이전의 문화적 특색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그 한가운데 1942년 출생 이건용은 몸으로 소리를 낸다. 한반도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무렵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6·25 동란 중 두 명의 동생을 잃었다. 개척 교회 목사였던 그의 부친은 작가의 예술적 세계관의 밑거름이 된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이건용은 쉼 없이 치밀한 구상과 그에 따른 파격적인 발상으로 후일 예술가로서 국제적 찬사를 받는다. ‘한국적’인 예술을 주로 여백의 미가 두드러지는 수묵화 혹은 도자기,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되는 명상적 현대 미술로 국한하는 대중의 선입견을 뒤엎는 그의 작업은 주로 신체의 한계를 주제로 일상의 당위성을 전복시킨다. 이건용의 작품에는 가장 뜨겁게 꿈틀대며 앞으로 나아가는 한국인의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감정에서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본 세계
이건용의 창작 방향이 명확히 자리 잡은 것은 1970년대이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박정희를 필두로 한 군부 세력이 민주주의에 그늘을 드리운 시기이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60년대 말부터 아방가르드, 즉 전위는 갓 예술을 시작하는 한국 청년들에게 핵심 사항이었다. 재식민화의 공포 및 급격한 근대 도시화는 민족주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이를 위해 정부는 서구 문물 및 소비문화를 통제하는 방안을 택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군사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계획이 성과를 보이며 전례 없던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된 시민들은 더 많은 해외 문화자본을 접하며 자기만의 취향 및 습속을 누렸다. 우리 고유의 것으로 회귀하기를 강요하는 정부의 억압에 맞서 소위 ‘퇴폐 문화’를 선동한다고 일컬어지며 경시되던 전위작가들은 문화적, 인격적 해방을 외쳤다. 그리고 이 행위의 결과로 국가안전기획부와 경찰서 등에 끌려가 심한 고문을 당하는 등 무분별한 탄압을 받았다. 거리에는 독재정권 타도를 위해 연일 최루탄이 던져졌다. 한 치 앞도 모른 채 그저 투쟁의 길을 걷던 당시 예술인들의 틈바구니에서 이건용은 ‘이벤트-로지컬’이라는 묘안을 내놓는다. 감정 싸움에 눈이 멀어버린 예술 판도의 화를 식혀줄 논리적 접근법을 고안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판단력을 상실한 독재 정부에 이건용의 논리적 행보는 권위에 대한 조롱에 불과했다. 1975년 작가는 <제2회 대구 현대미술제>와 <제4회 ’75 A.G.전>에서 <이리 오너라>, <내가 보이느냐>를 포함한 여러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전자의 경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리 오너라” 하고 부르면, 부름을 당한 사람이 그 앞까지 걸어가며 부르는 사람을 모욕시키는 일련의 행동을 보이는 퍼포먼스이다. 후자 역시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내가 보이느냐”고 외치면 부름을 당한 행위자가 상대방을 모욕하는 행위를 취하는 것이다. 예컨대 두 다리를 벌리고 상반신과 함께 얼굴을 수그려 사타구니 사이에 생긴 공간을 거쳐 거꾸로 본다든가,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어 그 틈새로 본다든가, 팔꿈치를 접어 얼굴 가까이 댄 후 그 너머로 쳐다본다든가 하는 치욕스러운 제스처로 부른 이를 바라보는 퍼포먼스이다.
그 결과 같은 해 12월, 국립현대미술관장의 명의로 “로지컬 이벤트는 사이비 전위예술이므로 이건용은 앞으로 미술관에서 전시에 참여할 수 없다”는 공문을 수령하게 된다. 이건용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뜻이 맞는 젊은 작가들을 불러 모아 원본을 소각하는 일명 ‘공문 화형식’을 진행한다. 공안당국에 끌려가 두 다리에 각목을 끼워 넣고 짓밟히는 고문을 당하여 10년간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와중에도, 이건용은 특유의 위트와 이성을 발휘하며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대담함을 보인다.
이건용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대부분의 주제와 소재가 외부 세계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많은 예술가가 순수하게 내면에서 발산되는 이념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여 현세의 물정을 외면하는 경향을 띠는 반면, 이건용은 본인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미시적·거시적 사건·사고들을 전위적 형태의 작품과 행위예술로 승화시켜 관객의 사고를 환기한다.
“무엇을 만든다든가 작품화한다는 의식보다는 접근한다, 체험한다, 경험한다, 참여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작업은 자연 환경적인 요소를 특징으로 가지며 이것이 나의 작업에 하나의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건용 작업노트 중, 1971)¹
일례로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목적으로 뿌리째 뽑힌 아름드리나무의 몸통을 사각 입방체 모양의 흙더미째 전시장에 옮겨 온 <신체항>이 있다. 이는 1971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미술협회전에서 선보인 바 있으며, 2년 후인 1973년 파리 비엔날레에서 파리 국립공원의 나무를 이용해 같은 작업을 진행했다. 이를 위해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에 탑승하여 신체가 지역을 이동하고 있음을 실감한 작가는 몸이 예술의 매체로 작용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특히 리안갤러리 서울과 대구에서 2017년, 2019년, 그리고 2022년에 걸쳐 진행된 이건용 개인전을 장식한 <신체 드로잉> 시리즈는 시각적 언어—작가는 보지 않고 그린다—혹은 자율적 움직임이 결여된 신체의 한계를 화면에 그대로 옮긴다. 이는 갓 걸음마를 뗀 딸이 크레파스를 쥐고 뒤뚱거리며 걷다 쓰러져 벽에 선을 긋는 장면을 포착한 것을 계기로 시작된 시리즈이다. 작가는 벽 가까이 다가가 힘겹게 선을 긋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선 긋기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이처럼 이건용의 예술관은 끝없이 내면으로 회귀하는 명상적 태도를 취하는 당대 한국 예술과는 달리, 본인의 실제 경험에 입각하여 세계를 바라보고 검토한 논리와 이론을 적용하여 외부와 소통하는 작업을 중심으로 일구어졌다.
신체와 장소, 연대의 객관화
1967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한 이건용은 대현동 이화여자대학교 부근에서 미술학원 겸 화실을 운영한다. 그는 2년 후 그곳에서 현 미술평론가 김복영과 함께 훗날 자신의 작업 세계에 축대가 된 <S.T (Space and Time) 그룹> 조형미술회를 창도한다.
이건용이 S.T 그룹을 통해 현대 미술의 정보 교환을 진행하던 무렵,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을 기점으로 유럽권을 넘어 남미와 아시아에까지 평등과 인도주의를 외치는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18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며 지나친 합리주의와 계몽사상에 절여진 서구 사회는 점차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의 역사에 오래도록 자리 잡은 이원론적 사고는 인간과 세상의 속성을 이성과 본능, 그리고 이를 지배하는 정신과 신체, 주체와 객체 등으로 분리하여 인식하였다. 이는 만물의 조화를 중시하는 동양적 사고와는 판이하였다.
막대한 식민 사업으로 근대 국제 정세 헤게모니의 우위를 차지하던 그들의 환원주의적 이념은 자연히 피식민지에 스며들었다. 1945년 미국 정부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며 한반도를 비롯한 많은 식민 국가에 자유를 안겨주고, 자본주의 체제의 미국과 소련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 간 갈등으로 인해 6·25 동란이 발발한 이후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도 서양 철학의 유입은 자연스러운 절차였다.
그중 이건용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잘 알려진 메를로퐁티의 ‘존재의 살결’ 이론과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이 있다. 동양 국가 중 빠르게 서구 문물을 습득한 일본의 교육을 받았던 이우환 작가의 <만남의 현상학>(1969) 속 ‘관계항’ 이론 역시 이건용에게 크나큰 영감을 주었다.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이건용의 신체와 장소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타자와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그 정체성이 수립된다.² 세계는 수많은 입자의 총체이며, 신체는 많은 입자 중 일부의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입자가 어느 곳에 위치하는지에 따라, 즉 장소에 따라 세계와의 관계가 성립된다.
신체와 장소의 관계는 한 지점의 시공간에 맞물려 이루어지고, 그렇게 얽히고설키며 쌓이는 관계들의 합이 세계를 만들어 간다.
한국전쟁과 여러 차례의 민주화 혁명을 거쳐 빠른 속도로 근대화되는 한국 사회의 생생한 흐름 속에서 작가는 다양한 관계의 대립을 목도하였다. 내면의 성찰이 창작의 주된 원동력이 되곤 했던 한국 미술사에서, ‘자아의 장’이라고 볼 수 있는 개인의 신체 밖에서 그가 속한 공동체를 바라보는 신체와 장소 이론은 유의미하다. 이건용이 활발히 작품 세계를 확장하던 1960, 70년대와 같이 전망이 불투명하고 국민이 불안정한 사회에서 각각의 개인이 중심을 잡고 일어설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들이 자아실현만을 쫓지 않고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등의 관계를 제삼자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외적 소통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응당 군사 체제 아래 대한민국에 국한되지 않고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을 잠재우는 데에도 필요한 접근이다.
물에 기생한 이건용의 예술
이건용은 생태계 안에서 감정과 사유로 이루어진 주체이기 이전에 몸과 장소로 존재하는 우리들의 삶을 그의 예술관에 접목하여 동시대의 사회 이슈를 조명한다. 나아가 21세기에 들어서는 기술과 공업에 의존하는 현대 문명의 위험 징후를 꼬집어내고자 숙고를 기울인다.
한 개인에게 있어 가장 커다란 세계인 신체를 중심으로 펼쳐내는 그의 작업 세계는, 다만 반세기 전 인간 세력에 의한 사회 통제가 신변에 위협을 가했던 시절과는 달리 자연, 전력 등을 포괄하는 비인간 세력, 즉 다른 인간 신체의 통제를 벗어난 규모의 문제를 직면하는 지금을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는 <신체항>이 발표된 해 작가가 예술 형태에 대하여 숙고한 작업 일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2022년 리안갤러리 서울과 함께한 전시 <Reborn>을 장식한 <신체 드로잉> 시리즈를 현재까지도 왕성히 제작하고 있다는 데에서도 그 의의를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자연과 연대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일관된 메시지를 표현하려는 작가의 깊고 긴 고찰이 드러난다.
“공업화의 경향은 모든 존재를 기술화와 인공화의 수단으로밖에는 더 이상 혜택을 받을 수 없게 하는 것이며 그곳에서는 모든 사고와 감각과 지식이 기계론적 메마름을 조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는 생태계의 파멸을 조성하며 생태계의 연대 관계와 존재의 종합적인 지각이나 의식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금일의 작가들은 공업화가 몰고 온 감각과 지각과 인간 의식의 기계론적 메마름에서 탈출시킬 생의 근원적인 의미를 부활시킬 것이 요망된다고 생각된다. 즉 탈공업화의 의식은 중요한 문제이다.”
(이건용 작업노트, 1971)³
자연 원물을 그대로 가져다 사용하거나 버려진 공업의 잔해를 활용해 작업하는 이건용이 던지는 핵심적 메시지는, 예술을 통해 인공의 기계와 인간 사회의 수많은 계약으로 인해 메말라가는 생명의 물을 보급해야 함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며 그려낸 작가의 회화 <물에 기생한 예술>(2002)을 살펴보면, 그의 초기 대표작 <신체항>의 목본경에 물컵을 들고 있는 작가 본인의 상반신을 연결하여 마치 자신의 작품과 물아일체가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시각적 합치는 자연과 인간을 이원론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해진 현대의 사고 체계에 물을 끼얹는 듯하다. 그림 속 작가가 손에 든 컵으로 물을 마시면, 그것이 흙 입방체에 박힌 나무의 물관을 타고 뿌리로 스며 토양에 도달할 것만 같은 환영은 마침내 관객의 시야에 들어차 사유를 충만하게 한다. <탄생>(1986, p. 94), <물고문>(1986, p. 98), <망각의 물>(1988, p. 102), <독 속의 문화>(1989, p. 108), <구조조정(건너뛰기)>(1998, p. 134) 등 여러 작품에서 알 수 있듯 ‘물’이라는 소재가 작가에게 지니는 의미는 남다르다. 물은 생명과 죽음이 동시에 포진해 있는 ‘장소’이며 ‘신체’가 기생하는 숙주이다.
2022년 리안갤러리 서울과 함께한 개인전 <Reborn>에서 역시 작가는 바다와 북극의 빙하 등 물로 순환하는 자연을 담론에 올린다.
기존에 작업해 오던 신체 드로잉 시리즈에 변주를 준 이번 작품들은 캔버스 자체에 사진 이미지를 전사하여 그 위에 선이 그어졌다. 1970년대 발표작과 확연히 다른 점은 풍부한 색채와 사용 도구의 다양성이다.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나무판에 펜 혹은 연필로 담백하게 뻗도록 한 초반과 달리 신체 드로잉은 시간이 지나며 다양한 회화적 변화를 거듭한다. 80년대에는 아크릴 물감 등 사용하는 미술 재료의 범주를 넓히고, 90년대에는 인류 사회를 다각도에서 조명하는 인간항 연작을 선보이는 등 내용의 깊이를 더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사회적 의의가 담긴 장면을 사진으로 포착하여 캔버스 천에 전사 후, 그 위에 신체 드로잉을 더하여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더욱 직접적으로 시사점을 던진다. 2010년대 이후에는 신체가 캔버스를 만나는 작업의 방식을 조금씩 변형하여 작품관을 확장하는데, 특히 <Reborn>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작가가 기존부터 논의해 오던 환경적 위기를 감상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미지를 전사한 배경으로 제작되었다.
예컨대 근래 일명 ‘하트 그림’으로 알려진 신체 드로잉 시리즈 76-3은 화면을 옆에 두고 서서 양팔로 한쪽씩 반원을 그려 좌우대칭의 모양을 이루는 도상을 띤다. 2022년 전시를 앞두고 작가는 북극곰 사진이 전사된 캔버스 위에 신체 가동 범위 크기의 하트 형상을 얹는다. 마치 어미 곰이 아기 곰에게 저 멀리 하트를 한번 보라는 양 말을 건네는 가족적 상황을 상상하는 여든의 예술가는 철저히 신체와 이론으로 표현하곤 했던 그림에 환경과 생태에 대한 애정 어린 감정을 담아 이야기한다.
이외에도 그는 어스름이 지는 하늘 아래 겨울 바다, 녹음이 우거지고 개울이 얇게 흐르는 산의 풍경 등 다양한 물의 모습을 그린다. 관객은 이상기후를 겪으며 물로 인해 생존하고 물에 죽임을 당하기도 하는 지구 위의 생명체들이 81세 이건용 신체의 제약된 움직임을 만나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한다.
리안갤러리의 두 번째 도록을 펴내며
이건용 작가와 함께 펴내는 리안갤러리의 두 번째 도록은 그의 예술론이 모양을 드러낸 1960년대부터 시작하여 팬데믹, 기후 위기 등 범세계적 난관을 겪고 있는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동시대 각종 사회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안주하지 않는 현재의 이건용을 살펴보는 데 그 의의를 둔다.
10년 단위로 변화하는 그의 관심사를 따라가는 각 장은 해당 시기 작가가 몰두한 관념 혹은 주제를 드러내는 작품과 제작 및 퍼포먼스 과정, 그리고 그것이 한국 현대사와 맞닿는 지점을 고찰한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일상을 표현하는 데 크게 기여한 작가의 연대기를 당시 발생한 사회적 사건·사고와 나란히 배치한 연혁은 독자가 한민족으로서의 뿌리를 잊지 않되 외부 세계로 뻗어나가는 통찰을 거두지 않는 그의 예술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이다.
이어 1장에서는 70년대 이후 세밀한 연구와 진취적 실험으로 정립한 ‘신체와 장소’를 둘러싼 작품관을 다룬다. <체-71>(1971, p. 40), <신체항>(1971, p. 46), <신체 드로잉>(1976, p. 54) 등 한국전쟁 이후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오랜 독재 정권을 겪은 대한민국의 어두운 정세 속에 꽃피운 몸의 예술을 소개하고자 한다.
2장에서는 앞서 언급했듯 80년대에 접어들며 ‘물’을 소재로 한 사회 비판적 작품을 살펴본다. 독재 정권 타도에 성공한 90년대부터 새로운 밀레니엄으로 전환을 겪은 2000년대에 걸쳐 창작된 작품을 살피는 3장에서는 <인간항>(1990, p. 116), <구조조정>(1998, p. 126), <여성을 위하여>(2008, p. 140) 등을 다룬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기본적 권리를 논하는 다양한 회화와 설치, 퍼포먼스가 여러 갈래로 나아가며 국내 이슈에 국한되지 않고 밖으로 성숙하는 작품관을 엿볼 수 있다.
2010년대 이후를 담은 4장에서는 국내 사회 현상에 그치지 않고 국제적 사건·사고를 보다 적극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이건용의 <시방(+)-신문 드로잉>(2013–2015, p. 146), <박스 드로잉>(2017–2019, p. 154) 등을 소개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2022년 리안갤러리와 함께한 개인전 <Reborn>에서 크게 활개 친 인류와 자연을 향한 작가의 애정이 드러나는 회화 작품들을 면밀히 담아내고자 한다. 이에 따라 현대의 관객은 쌓아온 세월의 에너지를 잃지 않고 누구보다 동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고자 하는 퍼포먼스 아티스트로서의 이건용을 만나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바이다.
주석
- 이건용, 1971, 1974, 1979년경 작가 노트, 『project 1974』.
- 김복영, 「이건용: 신체와 장소를 찾아서 40년」, 『2007년도 제8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작가 초대전』, 2008, pp. 9–10.
- 이건용, 위의 작가 노트.






본 에세이는 2022년 리안갤러리에서 발간한 이건용 작가의 도록을 위해 집필한 글입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