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여름의 한가운데, 해가 가장 높게 떠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인 하지(夏至)다. 하지 이후로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고. 태양의 기운이 정점에 이른 일요일, 의외로 밖순이 체질인 나도 오늘만큼은 에너지가 고갈됐는지 자극 없는 휴식을 취했다.
입맛도 체력도 달아나는 이런 날에 어울리는 차는 백차 중에서도 가장 맑은 백호은침이다. 흰 솜털이 난 은빛 바늘이라는 뜻의 백호은침은, 찻잎의 어린 싹과 눈만을 사용해 만드는 백차다. 차류 중에서도 가공이 가장 적은 편에 속하는, 말하자면 미니멀리스트 차.
채엽한 싹을 어느 정도 시들린 뒤 말리는 것이 주된 과정으로, 녹차처럼 인위적으로 산화를 막거나 홍차처럼 산화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섬세하고 달며, 흰 꽃과 꿀, 허브의 옅은 뉘앙스가 은근히 올라온다. 체열을 내려주는 효과도 있다니, 여름맞이에 적격이다.
제습기를 하루 종일 돌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물통이 꽉 차는 요즘이다. 햇빛, 습도, 낮의 길이, 몸의 피로감까지 모두 커지는 와중에 먹고 마시는 자극마저 더해진다면 쉽게 고장 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얼음만 와작대긴 아쉬울 때, 달큰한 백차 한 잔으로 기운을 차려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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